Categories
목회 칼럼

6/13/21 목회칼럼

정의보다 더 나은 관용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미경씨가 쓴 “살아있는 뜨거움,”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무능했습니다. 손을 대는 것마다 망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부인에게 충동질을 합니다. “왜? 그런 사람하고 사냐?”고, “그게 남편이냐?”고, 이혼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옮고 정의로운 말입니다. 그때 아내가 말합니다. “남편이 돈 못 버는 것이 이혼 사유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편이 돈 못 버는 것은 아내가 나가 돈을 벌 사유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 단 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싫으면 버리고, 좋으면 선택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 천지라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일이 꼬이고 엉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상황이 얽힌 관계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냥 엉킨 채로 놔두고 풀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단 칼에 베어버리려고 합니다. 순간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여파는 너무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선은 시간이 걸려도 한 올씩 푸는 것이 부작용이 없습니다. 특별히 생명을 다룰 때는 이렇게 다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꼬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자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엉키면 심각합니다. 복잡한 감정이기에 쉽게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면 기도가 막히고. 예배가 식어가고 점점 분열이 심화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는가? 문제를 푸는 길은 동일합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치열한 싸움 이후에도 죽지 않고 생존 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중재와 타협으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 하나 됩니다. 주 안에 있으면 기쁨이 옵니다, 그래서 기쁨은 노력이 아니라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문제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문제라도 예수 안에 들어오면 풀립니다. 문제에 대한 언급 없어도 됩니다. 깊은 예배를 드리면 다 해결이 됩니다. 살균 실에서 몸부림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있으면 살균이 됩니다. 

또한 문제를 푸는 길은 관용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관용이란? 정의보다 나은 무엇이라고 합니다, 정의는 죄 지으면 죽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정의는 문제를 풀지 못합니다. 일벌백계로 될 것 같았으면, 절대 권력자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을 것입니다. 정의보다 더 나은 관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 똘똘한 3명의 제자만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계속하여 잡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때가 잘 때냐? 하지 않으시고 그럴 수도 있지! 하십니다. 이것이 정의보다 엄청나게 더 나은 관용인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풀리는 것입니다.

Jun, 13, 2021. 서재 실에서, 김 병규 목사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