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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8/15/21 목회칼럼

없음이 기적을 맛보게 하는 기회입니다

구원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없음에서 시작됩니다. 없음에서 구원은 시작됩니다. 삼손의 부모 마노아 부부는 불임이었습니다. 불임은 불가능과 미래 없음을 뜻합니다. 마노아는 약한 단 지파출신 입니다. 그가 사는 소라 땅은 블레셋과 유다 지파의 접경지입니다. 위험한 곳입니다. 그리고 소라라는 뜻은 비참하다요, 모든 것이 없음과 약함 투성이를 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이런 약함과 없음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가난과 없음. 병듦과 부족함, 나이 듬과 쫓겨남, 희망 없음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바로 그런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복의 시작점도 가난과 심령의 가난한 곳에 있었습니다. 

가난에서 구원이 시작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 바로 전의 사사의 모습들은 많음에 있었습니다. 입산에게는 아들 30명, 딸 30명이 있었습니다. 압돈에게는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었습니다. 넘침과 많음과 풍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부모인 마노아 부부는 불임이었습니다. 없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많음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없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없음과 약함이라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인 것입니다. 없음이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될 기적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 사자가 마노아에게 아들 낳을 것과 기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마노아가 이름을 묻습니다.  하나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이 기묘자라 답합니다, 여기에 기묘자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사6:9절에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없음의 자리에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놀라움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삼손을 주심으로 약한 단 지파요 불임과 불가능과 무능 자를 통해서 블레셋 40년의 압제에서 구원을 주시는 것이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없음에 예수님이 함께 하면 항상 놀라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기묘자요, 놀라움을 주시는 예수님이 언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가?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기적이 임했습니다, 예배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배 때 병이 나았습니다. 예배 때에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예배 때에 모든 막힌 것들이 뚫리게 되었습니다. 예배 때에 우리 앞에 안보이던 길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에 대적이 무너졌습니다. 없음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사역이 원더풀 로 끝이 난 것입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원더풀, 예수님의 기적을 맛보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기억 합시다, 없음은 결코 절망이 아니라, 없음은 기적을 맛보게 되는 기회의 자리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Aug, 15, 2021. 서재 실에서, 김 병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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